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1로 전년 동월(104.85) 대비 0.04포인트 낮아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65년 이래로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일까요? 여기저기서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극심한 디플레이션을 겪게 될 것'이라는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는 걸까요? 오늘은 디플레이션이 무엇인지, 정의부터 이로 인한 영향까지 자세히 다뤄보려고 합니다.
디플레이션이란?
· 디플레이션(Deflation)
경제 전반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인플레이션이란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경제 전반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죠.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의 반대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어제의 자장면 한그릇 값이 5,000원이었는데 오늘은 4,500원이 되고, 내일은 4,000원이 되는 현상이 바로 디플레이션입니다.
다만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경제의 한 부분에서만 가격이 하락한다고 해서 디플레이션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위의 예시처럼 자장면 가격은 계속 떨어지는데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디플레이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리하자면, 디플레이션은 국가 전체의 물가수준이 지속적으로(몇개월~몇년 이상) 하락하는 상황을 뜻하며, 이는 물가상승률이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과 같습니다.
· 인플레이션 : 지속적으로 상품(서비스)의 가격이 상승
· 디플레이션 : 지속적으로 상품(서비스)의 가격이 하락
디플레이션의 원인
결과적으로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한 가격 하락
모든 재화의 가격은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만약 공급은 많은데 수요가 적다면 재화의 가격은 떨어집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많은데 정작 사는 사람들이 적다면, 판매자들은 자기 물건을 팔기 위해 경쟁적으로 할인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어떠한 원인으로 인해 공급량보다 수요량이 줄어든다면 재화의 가격은 떨어지게 됩니다. 장기적인 수요공급의 불균형(수요감소 및 공급증가)이 디플레이션을 일으키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디플레이션을 일으킨 것은 맞지만, 과연 무엇이 경제 전반에 걸쳐 수요공급의 불균형을 야기시키는 것일가?" 입니다. 경제시장에서 수요공급의 불균형을 발생시키는 원인은 정말 많지만, 대표적으로 아래의 원인들이 자주 언급됩니다.
· 디플레이션의 근본적인 원인
① 정부의 통화정책(→수요 감소)
② 투기적 행위로 인한 자산의 버블현상 후 버블의 붕괴(→수요 감소)
③ 대내외 악재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수요 감소)
④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공급증가 및 생산단가 하락(→공급 증가)
원인 1 : 정부의 통화정책(금리인상 및 화폐발행량 축소)
디플레이션은 정부의 통화정책 때문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기준금리 조절, 화폐발행량 조절 등 여러가지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상승률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만약 현재 물가상승률이 너무 높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금리를 인상시키고 화폐발행량을 축소시킴으로써 물가상승을 억제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물가가 거꾸로 떨어진다면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겠죠?
원인 2 : 투기적 행위로 인한 자산의 버블현상 후 버블의 붕괴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은 자산에 투자를 하다보면 가끔 비정상적으로 자산 가격이 폭등할 때가 있습니다. 부동산을 사면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다는 투기적인 생각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보통 이런 경우 실제 자산가치 이상의 버블이 끼기 마련인데요,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버블은 언젠가는 꼭 붕괴된다는 것입니다.
버블의 붕괴는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자산 가격이 너무 오른게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공감대를 이루는 순간 겉잡을 수 없이 자산 가격이 폭락합니다. 한번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하면 자산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감소합니다. 자산가치가 폭락하고 있는데 섵불리 자산에 투자를 하려는 사람들은 없을테니까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내가 가진 자산가치가 줄어들면 소비심리도 급격히 위축됩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일본은 1990년대 부동산 버블의 붕괴 이후 2012년까지 약 20년동안 급격한 경기침체를 겪었습니다. 해당 기간동안 물가상승률이 대부분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을 위의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가 버블붕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일본의 디플레이션이 버블붕괴 뿐만 아니라 엔화의 급격한 강세, 전세계 무역활성화 등으로 인한 글로벌경쟁 심화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인 3 : 대내외 악재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국가 대내외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 가령 국가간의 무역전쟁,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 그 밖의 다양한 정치적인 이슈가 발생할 경우에도 디플레가 올 수 있습니다. 세상이 뒤숭숭해지면 사람들의 소비심리가 얼어붙기 마련이죠. 비록 현재의 경제지표가 견고하다 할지라도 앞으로는 먹고살기가 팍팍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사람들은 좀처럼 주머니를 열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위축된 소비심리는 물가하락을 초래할 수 있고, 극단적으로는 디플레가 올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원인 4 :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공급증가 및 생산단가 하락
앞서 언급됐던 3가지 경우와 달리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원인은 공급량의 증가에 따른 좋은 디플레이션을 불러옵니다. 이런 좋은 디플레이션은 주로 20세기 후반 경제 성장기때 일어났던 현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국제 교역의 활성화로 인해 전세계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이로 인해 수요보다 공급이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물가가 떨어졌던 것이죠.
다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공급증가 현상은 공산품 쪽에만 치우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디플레이션으로 봐야 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1. 긍정적 영향
· 물가하락으로 인해 소비부담 완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공급의 증가는 좋은 디플레이션을 불러온다고 했죠? 공급의 증가로 인해 물가가 떨어진다면 그만큼 제품을 구입하려는 사람이 늘어나 전체적인 수요가 증가하게 됩니다. 수요가 늘어나니 경기가 활성화되고, 활성화된 경기가 다시 수요를 증가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디플레이션 효과는 국부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앞서 언급드렸다시피 이런 현상을 디플레이션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2. 부정적 영향
① 소비침체로 인한 고용시장 악화
② 채무자의 채무부담 증가
① 소비침체로 인한 고용시장 악화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상품의 가치가 계속해서 떨어지면 사람들은 돈을 쓰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생필품보다는 집이나 자동차같은 고가의 상품일 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앞으로 몇달만 더 기다리면 자동차나 집값이 더 떨어질텐데 굳이 지금 시점에서 무리하게 살 필요가 없으니까요.
소비가 침체되다보니 기업도 생산을 줄이고 현금을 보유하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생산에 투자해봐야 잘 팔리지도 않고, 상품의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 기업이윤도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생산위축은 다시 임금하락과 고용감소로 이어집니다. 기업에 근로하고 있던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득감소와 실업 증가로 이어지겠죠. 소비자들의 주머니사정이 나빠지다보니 소비침체는 더욱 가속화됩니다. 사람들이 상품을 사지 않으니 상품 가격은 더 떨어집니다. 즉 디플레이션이 스스로 디플레이션을 다시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이를 디플레이션 소용돌이(Deflationaly Spiral)라고 합니다.
디플레이션 소용돌이 : 소비침체 → 기업의 투자감소 → 고용감소 → 소득감소 → 소비침체 가속화
② 실질금리 상승으로 인한 채무자의 채무부담 증가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빚을 진 사람들의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만약 치킨요정이 5,000만원의 신용대출을 받았는데 그 후 디플레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디플레로 인해 물가가 하락하고 소득도 줄어들지만 갚아야 할 돈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치킨요정은 대출상환에 더욱 어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지속적인 디플레가 예상된다면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자산을 처분하여 대출을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너도나도 빚을 갚기 위해 자산을 처분하려 할테고, 자산가격은 또다시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참고로 채무부담 증가가 물가하락을 부채질하는 현상을 부채디플레이션, 자산가치의 하락으로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는 현상을 자산디플레이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둘 사이의 관계는 얽히고 섥혀있는 관계입니다.)
위의 예시를 경제학 관점으로 바라보면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실질금리가 상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질금리란 명목금리(위의 예시에서는 은행 대출금리)에 물가상승률을 뺀 값입니다.
실질금리 = 명목금리 - 물가상승률
채무자가 갚아야 할 돈의 액수는 그대로인데(=명목금리는 일정) 물가가 떨어지니깐 실제로 채무자가 갚아야 하는 돈(=실질금리)이 커지게 됩니다. 즉 채무자의 채무 상환부담이 더 커지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국가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흐름이 원활히 이어져야 하는데, 디플레로 인해 돈의 흐름이 막히니 경제가 몸살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몸이 망가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마치며
오늘은 디플레이션의 뜻과 원인부터 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 전반적으로 다뤄보았습니다. 디플레이션을 야기시키는 원인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좋은 디플레가 될 수도, 나쁜 디플레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디플레이션은 나쁜 디플레이션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 부정적인 원인으로 인한 나쁜 디플레이션 사례(20세기초 경제대공황, 일본의 사례 등)가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소비위축을 수반한 디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 경기침체가 올 수도 있습니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실물자산보다는 현금보유(특히 원화보다는 외화를 보유, 왜냐면 디플레이션이 오면 국제시장에서 원화 화폐의 신뢰를 잃을 수 있으므로 원화가치도 동반 하락할 수 있기 때문임)를 해두는 것이 내 자산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