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튤립,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흔한 꽃이죠. 그러나 이 흔한 튤립이 한때는 1억원을 호가하던 시절이 있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오늘은 네덜란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인 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바로 세계 최초의 버블경제 현상으로 기록된 튤립 파동입니다.
튤립의 역사
튤립의 기원은 중앙아시아의 톈산 산맥(천산 산맥)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이전 오스만제국이 세력을 넓히는 가운데 톈산 산맥에서 튤립을 처음 목격했다고 하네요. 이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그자리에 수도인 이스탄불을 건설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탄불의 장엄한 궁전에 튤립을 재배하게 되고, 이들이 상인들에 의해 유럽 각지로 전해지게 됩니다. 역사학에서는 이 시기를 16세기 중반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럽으로 건너간 튤립은 네덜란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튤립 농사는 플랑드르의 식물학자인 샤를 드 레클루제가 레이던 대학교에 소포로 튤립을 보낸 뒤 1593년 무렵에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위키백과>
튤립 버블의 시작과 선물 거래 제도
17세기 가장 비싼 꽃으로 팔렸던 Semper Augustus
* 출처 : 위키백과
당시 튤립은 식물 애호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단기간에 재배하기 어려운 품종인 튤립은 곧 품귀 현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수요 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튤립의 가격이 급속도로 상승하자 사람들은 이를 이용한 투기에 주목하게 됩니다. 당시 고급 품종 한뿌리로 집 한채를 바꿀 정도로 튤립의 가치가 올라갔습니다.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튤립가격이 1달만에 50만배나 뛰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죠.
튤립 파동의 정점은 1637년이었습니다. 당시 튤립으로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에 농민들이나 서민들도 시장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당시 서민들은 값싼 품종의 구근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곧 저렴했던 품종들의 구근 가격이 상승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전매 이익을 얻는 자들이 급증하였습니다.
전매 이익을 본 사람들이 많아지자 시장에 생소한 거래 제도가 하나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선물 거래 제도입니다.
계약서를 통해 미래의 튤립 구근을 사는 것이죠. "내년 중순에 튤립 가격을 지불하며, 그 때 구근을 받는다" 같은 계약서 말이죠.
당시의 선물거래는 정식 거래소가 아닌 술집에서 이뤄졌다고 합니다. 따라서 체계적인 거래가 불가능했고 누가 누구의 튤립을 사는지조차 모호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런 버블의 붕괴
1637년 2월 3일, 버블의 붕괴는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당시 튤립 구근의 가격은 형성되어있는데 거래가 전혀 없다는 인식이 증가하였고, 거래가 없음에 따라 어음이 부도가 났으며 지불을 할 수 없는 채무를 당한 사람이 당시 3,000명이었다고 합니다. 지불능력이 없는 채무자들은 도주하였으며 네덜란드 전역이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었죠. 순식간에 일어난 혼란상황에 네덜란드 의회가 직접 조사를 시행하였습니다. 조사 결과 법원에서는 튤립의 재산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그동안의 계약서는 모두 무효처리가 되었고, 버블은 순식간에 꺼져버렸습니다. 고점 대비 수천분의 1 수준으로 가격이 폭락한 것이죠.
결국 튤립버블은 소수의 파산자와 벼락부자를 남긴 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며
오늘은 역사에서 기록된 최초의 버블 현상인 튤립 파동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작스럽게 버블이 꺼졌을까요? 이는 튤립의 실수요보다는 가격 상승을 노린 투기 수요가 대다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데요, 닷컴버블, 부동산 거품 등을 거론할 때 이 튤립 파동을 예로 들곤 합니다.
투자의 관점에서는 교훈적인 이야기로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내재된 가치를 지나치게 벗어나는 상품에 무작정 투기를 하게 되면 이는 곧바로 투자 실패로 직결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런 방식의 투자를 지양(止揚)해야겠죠? 그럼 이만 오늘의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